WORKS
전시기획자 Curator
Goyang Artist Residency Haeum
Printed Cataloge Available
여기서 말하는 ‘초현실’은 일종의 합리성에 근거한다. 좀 더 정확하게는 합리성의 경계를 횡단한다. 손희민의 작업 과정은 생물학자의 연구와 닮아있는 유사-과학처럼 보인다. 작가는 생물학과 진화론을 연구, 참고하고 엄연한 사실을 예술적 창작에 차용하지만, 이 과정은 논리와 진실, 과학적 실증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정은 기존 사고와 범례를 해체하거나 재구성하는 비합리적 탐구 모델로 전환한다. 다시 말해, 작가의 작업은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을 그대로 반복하기보다는, 현재를 넘어서는 신비주의적, 비판적, 형이상학적 요소들을 작품에 결합시키는 것이다. 그를 통해 현재의 이해를 확장하고 나아가 사실과 상징 사이의 긴장을 시각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탐구하려 한다.
일례로 작가는 〈생물 조각〉 시리즈(2022-2023)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생물이나 멸종해버린 고대 생물을 마치 표본이나 화석처럼 재창조한다. 과학적 관찰 행위를 조각적/시각적 방식으로 변형하며 눈으로 볼 수 없는 생명체/세계를 감각하려 한다. 때로는 실제 생물학자와의 협업을 통해 현미경 속 미소 생물(동물)의 외형과 기관들을 탐구하고 이를 조각으로 형상화하며,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세계를 나름의 조형 언어로 번역하기도 한다. 이처럼 대상의 탐구를 예술적 상상력으로 확장하는 방식은 <매크로 미생물〉(2022), <변이적 조각〉(2022)에서처럼 복잡한 형태를 조각적으로 해석하며 세부적인 구조를 재현하기도 한다. 작업은 일종의 신비함을 드러내고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그 세계의 감각을 극대화하려는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작업을 관통하는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은, 이 세계는 어떻게 인지될 수 있는가?’, ‘그 인지는 어떻게 확장하는가?’의 질문은 작가가 다루는 (혹은 다룬다고 주장하는) 조각 매체 안에서 아이러니한 것이 되기도 한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조각은 늘 죽음을 체현해 왔다. 물질로 등장한 조각적 신체는 그것이 생명으로 여겨지더라도 대부분 과거의, 화석으로만 남은 생명들로 보이기 일쑤였고, 딱딱하고 움직이지 않는 그것은 소멸한 무엇의 ‘기념비’를 자처하곤 했다. 그렇게 지층 위에 직립한 형상들은 존재의 당위성을 스스로 증명하는 물질로서, 잃어버린 대상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같은 죽음의 신체로서 조각은, 그것의 물질성과 기념비성은, 현대 미술의 역사에서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비판에 직면한 조각의 방법론은 설치와 퍼포먼스, 해프닝의 실험 안에서 재고되고, 조각적 실천은 시간과 장소의 개념을 확장해보는 시도가 되기도 했다. 비로소 조각은 살아있는 실체와 결부되기도, 또 스스로 살아있는 신체임을 천명하기도, 생명의 흔적이나 아카이브 자체가 되기도 했다.
손희민의 일련의 조각은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과거 생명체를 복각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캐스팅의 방법을 취한다는 점에서 얼핏 죽음의 기념비라는 구태 조각의 시도와 방법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손희민 조각은 그로부터 미세한 어긋남을 도모한다. 어쩌면 작가가 말하는 ‘생명’의 질문은 조각이 재현/기념의 대상으로 삼는 외부의 객체뿐 아니라 매체 내부를 동시에 향하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대상을 객체화하며 ‘죽음’의 논리에 가까워졌을지도 모를 조각은, “저 대상/세계를 완전히 알 수 없다.”라는 비교적 분명한 명제를 배경에 두고 생명력을 얻는다. 손희민 조각은 특정 대상을 재현하고 물리적 상태로 전환하는 일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존재의 무한한 가능성이나 신비를 인식하는 열린 태도로 해석한다. 여기서 "알 수 없음”은 결핍이나 부족함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적 특성이자 창조적 가능성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작가는 인간 존재와 그 한계를 넘어 ‘알 수 없음’을 탐구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조각을 사고한다.
작가가 물리적 재료를 조형하는 행위는 단순히 형체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그 복잡성을 탐색하고, 그 안팎의, 미지의 영역을 형상화하는 과정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생물 조각〉 시리즈는 생물학적 데이터와 과학적 관찰을 바탕으로 하되, 보이지 않는 생물들의 ‘가상’ 표본/화석을 만든 것으로, 인간의 시각을 넘어서는 세계의 시각적 물리적 탐색을 의도한다. 2024년부터 진행 중인 〈미래 화석〉 시리즈 역시 미래 진화의 상상적 결과물을 표현하기 위해 화석이라는 매개체를 경유한다. 이 시리즈는 현재의 생명체나 기계적 존재들이 진화한 미래의 모습을 (미리) 화석화하여 생명의 탐구를 기계와의 관계로 확장하는 작업이다. 작가는 생물의 외피나 신체적 특징을 과장하여 묘사하고, 여기에 기계적 특성을 결합하여 미래의 생명체가 진화한 모습을 상상한다. 인공 합성 재료를 활용한 작업에서 작가는 기계적 진화와 생물학적 진화의 교차점을 탐색하며, 기술적 재현을 통해 과학적 사실과 예술적 상상을 결합하길 시도한다.
하지만 과학적 탐구와 예술적 상상력을 교차해 도달하는 ‘알 수 없음’은 그 유사 과학적 태도로 인해 몇 가지 문제점과 확장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내기도 한다. 손희민의 작업은 종종 비인간 생명체/기계를 인간적 관점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리서치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작업은 상당한 데이터를 필수 여건으로 삼는데, 이는 대부분 인간적 시각—무엇보다 개인적 차원—에서 수집된 정보들이다. 미지의 생명체를 상상적 영역에서 다둘 때에도 과도하게 정보/분석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지 않은지, 같은 맥락에서 그가 작업으로 제시하는 기계적 ‘진화’나 ‘미래’ 화석이 편향된 시각에서 직조된 인간적/사적 영역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동물학자 야코프 폰 윅스퀼(Jakob von Uexküll)은 무수한 독자적 환경 세계를 의미하는 "움벨트(Umwelt)”를 개념화하며 각 생명체가 자신만의 감각과 행동 체계를 통해 주관적인 환경을 구축한다고 주장한다. 동물들의 세계가 인간적 차원에서 추상화된 하나의 통일된 세계, 역사, 시간이 아닌, 각기 다른 저마다의 세계에서 구성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자신만의 주관적 환경, 즉 ‘움벨트’ 안에서 살아간다는 주장은 생명체를 지극히 인간적 관점의 분석 대상으로 간주하기보다는, 그 생명체의 독특한 경험과 존재 방식의 측면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를 요구한다. 같은 맥락에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의 조건』에서 윅스퀼의 주장을 통해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해 경고하며 인간과 자연/환경, 기술의 관계를 다시 성찰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손희민의 작업이 미지의 생명체를 고도로 구성된 형태로 시각화하고, 이를 투명한 재료나 매끄러운 조형 언어로 묘사하는 방식(〈생물 조각〉 시리즈), 혹은 인공 합성 재료를 활용해 복잡화하는 방식(〈미래 화석〉 시리즈)은 각 생명체에 고유한 ‘움벨트’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거나 체화하기보다는, 인간의 관점에서 추상화한 결과물로 보일 여지가 있다. 작가의 많은 작업이 생명체의 외형적 특징을 재현하고 있지만, 이러한 시각성이 생명체가 실제로 세계를 경험하고 관계를 맺는 방식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생명체의 세계를 단순히 관찰의 대상으로 축소시키고 있지 않은지 질문하게 된다. 다시 말해, 작업은 객체로서의 또 다른 세계를 적극적으로 지각하고 탐구하기보다 미시적이고 인간적인 시각-정보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장면으로 쉽게 오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최근 진행하고 있는 〈미래 화석〉 시리즈는 이 지점들을 인지하고 또 해결하려는 의지로, 이전 작업의 또 다른 확장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작업에서 작가는 대상 삼은 생명체의 외형적 복원에 집중하는 대신 가정된 (과거 또는 미래의) 생명체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에 몰입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을 보다 다양한 시각적, 조형적 언어로 번역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분석과 수집된 데이터 풀 안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최근 작업은 이전 작업에서 목격되었던 부재, 즉 개별 움벨트의 감각적 경험을 자각하는 모습이다. 미지의 생명체는 유사-과학 연구의 샘플로 추출되고 추상화되기보다 (비)인간과 기술, 생명들의 보다 복잡한 관계 안에서 이해되며, 작가는 생명을 암시하는 작업들 간에 나름의 역동성을, 상호작용성을 구축하려 한다.
고정된 시각적 형식이기보다 그 자체로 일종의 환경을 구축하며 관계성을 드러내는 작업은 직관적인 아름다움과 안정된 구조적 정교함을 넘어설 것이다. 이전 작업이 생명체를 인간의 분석적 틀 안에 두고 유사-이론적 혹은 미적 대상으로 환원했다면, 최근 작업은 미지의 생명체를 더 깊은 질문 안에 위치시킨다. 이때, 생명으로서의 조각은 저 시원적 과거와 도래할 미래 사이에 우리-인간을 환기하며, 화석화된 시간들이 각각의 환경 안에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상상하게 할 것이다. 작가의 최근 실험을 생명의 독립적인 세계관, 시간성을 더욱 확장하는 장면으로, 생명을 탐구하는 기술의 문제가 조형의 방식을 포용하는 장면으로 확인해본다. 생명에 대한 질문이 조각 매체의 확장된 장에서 또 다른 지평을 가리키길 바라며.